디지털 유산과 법 : 한국에서 사후 개인정보는 누구의 것인가?
디지털 유산 처리와 관련된 법적 제도와 허점, 개선 방향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그 사람이 남긴 온라인 기록은 누구의 소유일까?"
"가족이 고인의 이메일을 열람하고 싶어도, 법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사망 이후에도 SNS 계정은 남아 있고, 클라우드에는 수천 장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메일에는 마지막 인사말이, 블로그에는 살아 있는 삶의 조각들이 남겨지죠.
하지만 그 계정에 접근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법적으로도 복잡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사망자의 디지털 유산을 둘러싼 한국 법 체계의 현황, 그리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가족과 플랫폼, 고인의 권리 간 충돌을 구체적으로 다뤄봅니다.
1. 사망자의 개인정보는 보호 대상일까?
한국에서 개인정보 보호는 매우 엄격한 원칙을 따릅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망자의 정보가 ‘개인정보보호법’ 적용 대상이 아니며, 법적으로는 공백 상태라는 점입니다.
●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 대상
대한민국의 개인정보보호법 제2조는 ‘개인정보’를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 규정합니다. 즉, 사람이 사망하면 그 사람에 대한 정보는 법적으로 ‘개인정보’가 아니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대로 열람하거나 사용 가능한 건 아닙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대부분의 플랫폼(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등)은 사망자의 정보 역시 생전과 동일하게 보호합니다.
- 자체 약관과 국제적 기준(GDPR 등)에 따라, 사망자의 데이터도 원칙적으로 외부 제공이 제한됩니다.
- 따라서 유족이라고 해도, 법적 상속인이 아닌 이상 계정 접근이 어렵고, 상속인이라 해도 명확한 권한이 주어지는 건 아닙니다.
● 실무에서 발생하는 문제
가족들은 보통 아래와 같은 상황에서 법적 공백을 체감합니다:
- 고인이 남긴 이메일을 열람하고 싶어도, 플랫폼에서 “개인정보 보호상 제공 불가”라고 거절
- 블로그에 쓴 글이 수년째 방치되거나, 원치 않는 형태로 남아 있음
- 고인의 사진이 담긴 클라우드 계정의 비밀번호를 모르고, 2차 인증까지 걸려 있음
이런 경우, 법적으로는 고인의 권리가 종료되었지만, 실제로는 플랫폼 정책이 고인의 정보를 보호하고 있는 이중 구조가 작동합니다. 즉, 법은 사후 정보 보호를 보장하지 않지만, 기업은 보호하려고 한다는 점이 현실입니다.
2. 상속권과 디지털 자산: 법적으로 상속 가능한가?
디지털 유산 중 일부는 명확히 '상속 대상'으로 간주될 수 있는 자산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자산의 정의와 접근 방식이 플랫폼마다 상이하다는 점입니다.
● 상속 가능한 디지털 자산
1. 금전적 가치가 있는 자산
-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 온라인 쇼핑몰 포인트(쿠팡, 네이버페이 등)
- 인터넷은행 계좌와 앱 내 잔액
- 유튜브 광고 수익금, 애드센스, 티스토리 후원 수익 등
이런 항목들은 법적으로 유체물(물건)이나 채권처럼 취급되기 때문에 상속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여전히 복잡한 절차가 필요합니다.
예:
- 고인이 남긴 암호화폐를 상속하려면 지갑 주소, 개인 키, 2FA 해제 절차 등이 요구되며,
- 실명 인증이 필요한 온라인 계좌나 간편결제 플랫폼은 상속자임을 증명할 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 상속이 어려운 디지털 자산
반면, 아래와 같은 자산은 법적으로 상속 여부가 불명확하거나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 SNS 계정 및 커뮤니케이션 기록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
- 이메일, 메신저 대화 내용 등 사적 데이터
- 클라우드 저장소의 사진, 문서, 영상 등 개인 파일
- AI 생성 데이터, 검색 히스토리, 시청 이력 등 개인화 정보
이러한 자산들은 대부분 플랫폼 약관 상 ‘개인 전용 사용권’에 해당되며, 타인에게 양도 불가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또한, 저작권이나 초상권처럼 상속이 가능한 권리와는 구별되며, 삭제 요청은 가능하지만 열람은 어렵습니다.
3. 유족의 접근권 vs 고인의 프라이버시
현실에서는 고인의 정보에 접근하려는 가족과, 그 정보를 보호하려는 플랫폼 간의 충돌이 자주 발생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법적 논점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① 유족의 권리: 상속과 정리의 책임
가족이나 법정상속인은 고인의 디지털 자산을 정리할 책임과 권리를 가질 수 있습니다. 특히 금전적 자산은 민법상 명백히 상속 대상이기 때문에, 이를 관리·청산하는 것은 유족의 권한입니다.
하지만 플랫폼에 따라 요구하는 서류가 다르고, 일부 서비스는 해외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라 절차가 까다롭습니다.
예를 들어:
- 구글: 영문 사망진단서, 가족 관계 서류, 유언장 사본 요청
- 애플: 미국 법원 명령서 없이는 계정 접근 불가
- 국내 포털: 가족 관계 증명서 + 사망 증명서로 계정 삭제는 가능, 하지만 데이터 접근은 불가
② 고인의 프라이버시와 정보자기결정권
반대로, 사망자 역시 생전에 개인의 사적 정보가 사후에도 남겨지지 않길 원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플랫폼은 "유족의 권리보다, 고인의 프라이버시를 우선한다"는 판단 하에 접근을 차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판단은 법적 명확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플랫폼의 내부 정책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결국 유족 입장에서는 정당한 절차를 밟더라도 결과를 보장받지 못하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4. 실제 사례에서 드러나는 법적 공백
이러한 법적 공백은 실제 사례를 통해 더욱 명확히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2022년 한 시민단체는 부모를 잃은 미성년 유족이 고인의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을 백업하고 싶어 했으나, 네이버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요청을 거절한 사례를 공개했습니다. 해당 블로그에는 고인이 자녀에게 남긴 일기와 메시지가 있었지만, 접근 권한이 없어 결국 자료는 삭제되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예로, 2023년에는 유명 유튜버가 암 투병 끝에 사망했지만, 가족이 유튜브 채널 수익 정산을 받지 못해 법적 다툼으로 이어졌습니다. 구글 애드센스 계정이 개인 명의로 등록돼 있었고, 본인 외에는 수익을 확인하거나 출금할 수 없었던 것이죠.
이처럼 디지털 유산은 실질적인 재산일 수 있음에도, 소유권이나 관리권이 명확하지 않아 법적, 감정적으로 이중의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5.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까?
결국 현행 법률이 미비한 상황에서는, 개인이 사전에 할 수 있는 대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행동을 권장합니다:
- 중요한 계정 정보를 정리하고 암호 관리자 앱에 등록
- 구글, 페이스북 등 플랫폼별 사후 계정 관리 도구 활용
- 중요한 문서나 사진은 클라우드뿐 아니라 오프라인에도 백업
- 신뢰할 수 있는 사람 1~2명에게 사후 정보 처리 계획 공유
- 디지털 유언장을 직접 작성해 클라우드 또는 USB에 보관
특히 암호화폐나 창작 수익처럼 명확한 자산성이 있는 항목은 유언장 또는 상속 계획에 반드시 포함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디지털 권리를 위한 법제화,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디지털 유산은 아직 법제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로 사망자의 권리도, 유족의 권리도 명확히 보호되지 못하는 회색 지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음과 같습니다:
디지털 유언장을 생전에 준비하고
각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사전 설정(구글 Inactive Account, 페이스북 유산 연락처 등)을 활용하며
중요한 계정 정보는 신뢰할 사람 또는 암호 관리자 앱을 통해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도 이제는 ‘디지털 유산 관련 법제도’ 정비가 시급합니다.
이미 독일, 미국, 프랑스 등은 사망자의 디지털 계정 처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법률을 갖추기 시작했고, 유럽연합(GDPR)도 사망자의 데이터 보호를 일정 수준 보장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그들이 남긴 디지털 기록은 서버 어딘가에 방치되거나 삭제되고 있습니다. 이 정보들은 고인의 인생 기록이자, 가족에게는 추억이며, 때로는 실질적인 경제 자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유산을 다룰 법적 도구가 없습니다.
입법적 공백을 개인의 준비로만 떠맡게 되는 현실은 개선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발맞추어,
- 사망자 디지털 유산 처리 기준 마련
- 유족의 정당한 접근 요청에 대한 합리적 절차 제공
- 플랫폼의 책임과 유족 권리 간 균형점 제시
같은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시점입니다.